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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의 역주행

망상 2008/04/24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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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 2006년이던가. 설기현선수가 세네갈전에서 반대편으로 역주행 드리블을 선보이며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게 실점의 위기를 주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물론 설기현 선수 혼자만의 잘못이랴. 주변을 바치고 있던 동료들의 움직임, 상대편 선수들의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전술적 실패의 요인도 크다.

그리고 나서 어쨌든 지금은 2008년. 분명히 날은 화창하고 햇살도 좋은데 이상하게도 내 등골은 서늘하고 가슴은 갑갑하다. 또다른 역주행을 보고 있어서 그런가. 설기현 선수의 10초짜리 역주행이 아니라 5년짜리 초대박 역주행이어서 그런가. 그리고 이 역주행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덩어리, 기대어 살고 있는 사회, 사람들, 우리들의 미래를 책임일 정책 전반에 걸쳐 나타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그런가.

현 정부가 펼치고 있는 일들은 단연코 역주행이다.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패러다임의 역주행이다. 그리고 조금 더 보태자면, 이 패러다임의 역주행은 비단 현정부에 국한된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다. 노원의 서민들은 강남의 땅값에 저주를 퍼붓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곳에선 노회찬이 패배한 대신에 근거도 없고 실체도 없는 뉴타운이 승리했다. 계급배반이라 한다지. 서민이 부자정당을 찍고, 일용직 노동자가 친대기업정당을 찍는일. 아, 어쩌면 너무 답답한 마음에 너무 앞서 말한감이 없지 않아 있다. 본래 내가 말하려던 패러다임의 역주행과 관련해서 말이다. 어쨌든 다시 돌아가보자.

어쩌면 내가 현정부의 정책기조가 '패러다임의 역주행' 이라고 한것은 모순이다. 패러다임이라는 것 자체가 현시대의 사람들, 사회의 가치관, 인식의 체계를 말하는 것이니까. 패러다임의 사전적 정의만으로 본다면,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전혀 역주행이 아니지. 어쩌면 순주행이다. 순풍에 돛을 단 쾌속주행이라고나 할까. 왜? 총선 결과를 보라니까. 이 시대 이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들의 패러다임이 바로 그거니까. 계급배반적이고 이기적인 천민 자본주의. 아니라고? 그 말이 불편하다고? 그럼 먼저 숱한 계급배반에 대해서 설명해보시지. 대학생들이 등록금때문에 죽겠다고 죽어라 난리를 치면서도 50%이상의 지지율을 한나라당에 던졌다. 취업좀 시켜달라고 온국민이 보는 TV앞에서 앞뒤 안맞는 소리를 해가며 '진짜 미치겠심더!' 하면서 질질 짜대던 청년이여. 취업은 제대로 하셨는지?

나 는 분명 '패러다임의 역주행' 이라 했다. 그리고 앞서 이것은 모순이라 했다. 자, 다시 정정하겠다. 그것은 모순이 아니다. 모순인것은 바로 현재의 대한민국의 패러다임 자체다. 한번 멀리 떨어져서 큰틀에서 보도록하자.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은 앞으로 발전해왔다. 건국이후에, 군사정권을 지나고 대한민국 특유의 산업혁명 시기를 거쳐, 산업의 중심이 점차 고도화 되고, 그에 따른 복지, 개개인의 자유, 문화의 다양함이 필요한 사회까지 오며 점차 성장했다. 그리고 분명 여러가지 진통을 겪긴 했지만 다음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국민의 밥상을 지키는 일, 학자금보조, 개개인의 인권신장, 환경보전, 중소기업 지원, 무차별한 개발의 규제, 창의적인 교육 등등 자본주의와 무한경쟁의 역기능을 순화시키는 정책들이 많이 생겨났었다. 아니, 최소한 그러려고 했다. 이것들은 분명 산업혁명과 정보혁명 시대를 넘어선 그 다음시대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필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돈, 부동산, 경쟁, 경제, 대기업위주의 발전, 무역규제 완화, 뉴타운, 서울, 개발, 재개발, 환경규제 완화. 나의 생각이 꼭 맞다고는 볼 수 없지만, 최소한 내가볼땐, 내가 나열한 이 단어들은 다음시대에 필요한 패러다임은 아니다.

요약하자면 대한민국의 역주행은 정부의 정책뿐만이 아니다. 그 정책이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의 패러다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제대로 된 정책, 국정운영, 정치란 무엇인가? 당장 현시대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을 충족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다음시대에 필요한 패러다임의 기초를 닦아놓고, 국민을 앞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다.

하 지만 2008년 대한민국의 주행방향은, 국민의 먹거리를 위협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개방, 다시 학생들을 획일화된 무한경쟁속으로 밀어넣는 교육정책의 부활, 서울 중심의 재개발, 환경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대운하정책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과연 현정부가 서민을 위한, 약자를 위한, 지방을 위한, 복지를 위한, 환경을 위한 정책을 하나라도 내놓았던가?

현정부는 현재의 패러다임을 충족시켜주는데에 급급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다음시대의 패러다임을 준비한다기보다 오히려 몇 세대 전에 성공적이었던 패러다임의 가치들을 끌어와 억지로 끼워맞추고 있다. 이미 지나버린 세대의 패러다임의 가치는 이제와서는 쓸모가 없다. 이 방법은 당장 국민들을 현혹시키는데는 성공적일지 모른다. 수소엔진을 개발하고 있는 시대에 증기기관의 효율을 높여서야 무엇에 쓰겠는가? 이것이 바로 현정부의 패러다임의 역주행이다.

현 정부는 더이상 가치가 없어져버린 옛 시대의 패러다임을 끼워맞추며 감언이설로 국민을 속이지 말라. 대신에 대한민국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무엇인지, 다음시대에 우리 대한민국에 필요한 패러다임과 그 가치가 무엇인지 비전을 제시하라. 당장의 집권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의 길을 준비하라. 당신들의 길은 감히 말하건대, 틀렸다. 예전의 길이며 과거로 회귀하는, 이미 예전에 가치가 소멸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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